2019년 가장 뜨거웠던 감자가 조국 사태라는 점엔 대부부분 동의할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후보자 지명부터 사퇴까지 기나긴 두 달이 동안 여러 진보 인사들은 조국 사태와 조국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시민들 역시 조국 사태로 인해 극명하게 분열하고 대립했다. ‘보수는 부패해서 망하고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지난 수 십 년간 진보가 이 정도로 극명하게 갈라진 사례는 없었다. 촛불 시위를 통해 박근혜를 탄핵시키며 그 어떤 집단보다 하나로 뭉쳐 강력한 힘을 냈던 진보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갈라졌을까? 필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통해 조국 사태에서 발견한 진보의 분열을 해석해 보려고 한다.

한(恨) 그리고 이상(理想)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양보 없는 토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문장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TV 토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검사들의 노골적인 무시와 냉대는 노무현을 당선시킨 수많은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검찰에 분노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에게 있어 어떤 존재였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정치적 지지 기반 없이 오직 시민들의 지지로 살아온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던 민주화 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다. 민주화 투쟁의 맨 앞에서 싸워왔던 시민들에게 노무현은 단순히 이념이 같아서 지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권력과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고,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는 분신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단순히 좋아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의 당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청년 시절부터 싸워왔던 독재와 권력 그리고 기득권에 대한 시민들의 승리를 의미했다. 그들에게 진정한 민주화는 6.29 선언이 아니라 노무현의 당선이었기에 노무현에 대한 검찰의 모욕적인 태도는 자신들을 향한 기득권의 모욕과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노무현이 임기 내내 검찰과 기득권자들에게 멸시받고 무시당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퇴임 후 검찰 조사 중에 자살한 사건은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권력 그리고 기득권에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었던 검찰은 단숨에 ‘전 대통령마저 죽인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떠올랐으며 적폐의 대상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에서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조사받던 우병우의 사진은 검찰이 반드시 개혁돼야 하는 존재로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이었으며 노무현 대통령과 평생을 함께 해온 정치적 동반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노무현-문재인의 관계와 너무나 비슷한 문재인-조국의 관계는 조국을 통해 문재인을 보게 만들고, 문재인을 통해 노무현을 보게 만들었다.

 이 일련의 관계는 조국에게 노무현의 적자라는 정통성을 부여했고, 검찰 개혁이라는 목표는 조국에게 대의명분을 부여해 진보가 그를 반드시 지지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조국은 노무현을 잃은 한을 풀어줄 존재이자 검찰 개혁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민주화를 다시 한번 경험시켜줄 사람이었다.

 조국을 지지하는 진보의 가치는 노무현을 잃은 한(恨)에서 시작된다. 그들에게 조국을 잃는다는 것은 노무현을 한 번 더 잃는 것이다. 조국을 지킴으로써 문재인을 지키고, 문재인을 지킴으로써 노무현을 잃은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검찰 개혁을 통해 노무현을 잃은 한을 극복함과 동시에 노무현의 승리를 다시 한번 경험할 것이다. 검찰 개혁이 완료되지 않은 지금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에겐 노무현의 상징과 죽음이 과연 크지 않은 것일까? 필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조국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 또한 뼛속까지 사무치는 노무현을 잃은 한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도 검찰은 반드시 개혁해야 하는 집단이며, 검찰 개혁을 통해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조국에 반대하는 것일까?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뤄져야만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연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중 명연설이 아닌 것은 단 한 개도 없지만 그중에서 단연 명문으로 남아있는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연설의 일부이다. 필자는 이 연설과 평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理想)을 ‘원칙과 상식,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올바른 방법을 통해 권력을 쟁취해 그 누구나 정의와 공정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아니꼬운 모습 좀 안 보고 살 수 있는 신명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노무현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사회가 무엇인지는 시민들 생각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공정, 정의, 원칙, 상식같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필요한 도덕적 개념은 반드시 포함된다. 노무현이 바라본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란 ‘비록 결과는 다르더라도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반칙이 허용되지 않기에 그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기에 누구나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노무현의 이상과 가치를 쫓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사회의 모습이고, 문재인 대통령 또한 이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대통령에 올랐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것을 국정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바로 여기서 조국에 반대하는 진보의 가치가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노무현의 이상은 노무현을 잃은 한보다 더 중요하다. 노무현을 잃은 한 보다, 내 편이라는 진영 논리보다 노무현의 이상을 추구하고 쫓으려 하기 때문에 조국에 반기를 든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나온 여러 가지 의혹들을 차치하더라도, 강남좌파를 자처하며 진보의 편에 섰던 조국 장관은 분명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일반 시민들은 시도조차 못하는 입시를 통한 기득권의 합법적인 권력 대물림 방법은 조국 또한 자신이 예전부터 비판해왔던 권력 그리고 기득권 세력과 자신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양이 됐으며, 이런 조국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 또한 자신의 국정 운영 원칙을 위반하는 모양이 됐다.

 학생부 종합 전형을 이용한 조국 장관 자식의 논문 저자 문제는 굳이 합법과 불법으로 따지지 않아도 대다수의 시민이 생각하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손쉽게 계급과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후세에 물려주지 않으려고 평생을 싸워온 진보에게 있어서 조국이 보여준 기득권의 민낯은 그들이 등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과거에 투쟁을 같이 해온 편이라고 할지라도 기득권의 특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국 장관의 행동이 ‘원칙과 상식’에 맞지 않기에 조국에 반대했다. 그들에겐 자신과 함께 해온 동지라는 진영 논리보다 추구해왔던 노무현의 이상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고, 그 어떤 집단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편에게 더 엄격했기 때문에 노무현의 이상이라는 잣대를 상대 진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들이밀었다.

 조국 사태가 불러온 진보의 분열은 한(恨)과 이상(理想)의 대립에서 시작됐다. 그 사이에서 가치들을 저울질하며 자신의 첫 번째를 정한 진보는 그것으로 세상과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필자가 조국 사태에서 발견한 진보의 분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분열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가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진보에게 있어서 가치의 우선순위로 인한 분열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열의 이유와 목적이 타당하며 서로의 가치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며 숙의될 때 분열된 진보는 다시 한번 뭉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진보의 분열은 분열로 끝나지 않고 진보를 한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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