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일어났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을 기억하는가? 조선인민군 육군에게 총상을 당한 채로 귀순하던 하전사가 대한민국 국군에 구조된 사건이다. 당시에는 귀순병을 직접 구출한 이가 JSA 경비대대장인 권 중령이 맞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사건 직후 대대장은 인터뷰를 통해 “차마 아이들(부하)을 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으나, 일부 언론에서는 판문점 TOD 영상에 대대장이 없었다는 보도를 했다.

 그로 인해 국방부가 영웅담을 창조하기 위해 진실을 조작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논란은 각종 SNS를 통해 확산했고 대대장은 많은 대중으로부터 질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공개된 TOD 영상은 언론으로 보도된 내용과 달랐다. 유엔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공개한 TOD 영상에는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귀순병에게 대대장과 부사관 2명이 급파된 모습이 드러났다. 대대장은 귀순자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 주변을 살피며 엄호했고 함께 급파된 부사관 2명이 포복으로 귀순자를 구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YTN 화면 캡처

 이 사건은 우리나라 언론 보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이었다. 빨리 이슈를 터뜨리려는 성급함과 더 많은 사람을 주목시키기 위한 정치적 분란 조성이 초래한 해프닝이었다. 당시 네티즌들은 ‘기레기’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으며 언론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다.

 사실 대중들이 언론을 불신했던 사건은 이 사건만이 아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을 기억하는가? 온 국민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 시스템의 불안정성 등 총체적인 불안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특히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오보로 밝혀졌을 땐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고, 이후에도 무수히 보도된 각종 추측성 기사들은 혼란을 가중하는데 충분했다.

YTN 화면 캡처

 대중들은 언론의 무책임하고 미숙한 행태에 대해 언제나 분노한다. ‘기레기’는 이런 이슈성 자체에만 매몰된 채 저널리즘을 잃은 기자들을 ‘쓰레기’로 비유하는 합성어다. 한편 대중들의 저널리즘을 잃은 언론에 대한 분노가 함축된 상징적 언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필자는 분노에 그치지 않고 언론이 전하는 정보를 우리가 성찰하는 것이 어떨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싶다. 국가적 재난이 일어났을 때 난무하는 추측성 기사들은 혼란을 가중하기 십상이며,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도 대중들에겐 안정적으로 정보를 대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언론이 전하는 정보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가치관 또한 우리도 모르는 새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단 점을 시사한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뉴스의 시대>에서 언론이 우리 삶에서 매우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성찰 없이 언론을 수용하기만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언론은 엄연히 기자와 편집자, 언론사의 손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도와 사회적 맥락은 언급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억양으로 말을 건넨다. 하지만 언론은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사와 보도자료가 사용하는 언어와 이미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그에 더해 수많은 의미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지음

언론은 어떻게 대중을 호도하는가?

 실제로 언론에서는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이 사용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전략 총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전략은 ‘충격과 공포’다. 명절 스트레스가 가정폭력과 이혼을 급증시킨다는 기사를 가정하자. 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명절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기사는 그런 반응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언론은 대개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집중해 트래픽을 증가시키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전략은 ‘숫자’를 활용한 ‘객관화’다. 언론은 숫자를 곧잘 사용하곤 한다. 숫자가 포함되면 뭔가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 숫자를 활용하면서도 모든 정보를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사실이 손실된 ‘그럴듯한 사실’까지만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낮을수록 외로움을 느낀다는 기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기사는 소득이 낮을수록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현대사회의 상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거의 모든 통계치는 모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측정하지 않고 일부 표본을 추출해 조사한다. 따라서 선정된 표본이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을 얼마나 갖는지, 조사자의 편향성이 반영되진 않았는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봐야 한다. 이 경우 소득별 선정된 집단 간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봐야 하는데, 대개의 언론은 이런 정보는 제외하고 단순하게 드러난 수치의 평균 차이만을 보여준다.

 마지막 전략은 ‘일반화’다. 다음 기사의 제목을 보자. <학교 화장실의 남녀차별…, 여학생 변기 수 적고 비좁아> 이런 제목을 보면 마치 모든 학교가 남녀 차별을 하고 있는 듯하고, 한편으론 이것이 마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검증하는 데 매달렸을까? 사회과학 연구는 ‘연구 결과의 일반화’와 ‘연구 대상 간의 인과관계’라는 2가지의 중요 요소를 가지며, 이 과정은 매우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기사는 단편적인 사실을 일반적인 것처럼 포장해서 서둘러 보도한다. 다른 매체보다 늦게 보도하면 이슈를 선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 성찰하기

 알랭 드 보통은 “몇몇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이미 신문과 방송이 실은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가 ‘평균적인 독자’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추측하면서 무한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날마다 임의로 뽑아낸 한 줌의 정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써 언론에 지나치게 흔들릴 경우 현실 세계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과거에 비해 셀 수 없이 증가한 언론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편견이 쉽사리 수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이 전하는 정보의 사실관계가 제대로 검증되기 전까지는 그 사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언론의 속성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언론을 성찰할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답변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