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만든 도덕 프레임과 더 도덕적이어야 하는 진보

우리는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고 하루아침에 노회찬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한 가지의 엄격한 잣대로 판단되어 공격받았다. 바로 도덕성이다. 유독 진보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도덕이라는 잣대는 진보의 숨통을 조여왔다. 불법이라면 무게가 가벼운 것도 ‘너 역시 다를 것이 없다’라며 국가적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비난받고, 합법이라도 도덕에 어긋나면 ‘도덕적이지 못한 정치인’이라며 공격받았다. 대중들은 진보의 조그마한 잘못에 불같이 화를 내며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보수 진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진보를 물어뜯는다. 진보는 왜 이렇게 도덕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진보의 도덕 프레임을 알기 위해선 먼저 보수가 어떤 프레임을 가져갔는지 알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는 경제와 능력이라는 프레임을 가져갔다. 아니, 가져갔다기보단 보수 스스로 그 프레임을 만들고 사용했다. 영국의 마거렛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트럼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보수 정치인들은 경제와 능력을 첫 번째 순위로 뒀다.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경제 신화는 그가 아무리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비도덕적인 일을 자행했어도 대중들로 하여금 ‘보수는 능력이 있고 경제를 살린다’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이후 단단하게 만들어진 보수의 경제 프레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수 또한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고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부패하고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와도 보수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언제든지 지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경제와 능력을 최우선 가치로 내건다. 많은 의혹들과 증언, 증거가 나왔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 성장이라는 결과를 보여준 보수는 진보보다 항상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보수가 견고하게 쌓아 놓은 경제와 능력이라는 프레임을 뺏어 올 수도 없었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에게 대항하기 위해 진보는 자연스럽게 보수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진보가 만들어내 스스로 쓴 프레임이 바로 추상적 가치들인 민주주의, 정의, 공정, 평화, 원칙 같은 도덕 프레임이다.

정당 회의실 배경으로 사용되는 백드롭을 보면 진보와 보수가 이용하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작년 5월경 민주당은 ‘평화는 경제다’라는 문구를 백드롭에 새겼는데 몇 개월 뒤 자한당은 이것에 반격하는 듯 ‘경제가 평화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진보와 보수 또한 자신들이 만들고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프레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진보는 그 프레임을 아주 잘 이용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당선은 진보 진영의 경제적 능력보다는 도덕과 정의, 상식 같은 추상적 가치의 승리로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보의 도덕 프레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들을 더 조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대중들은 정치가 더럽고 부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바라본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인식은 대중들이 참을 수 있는 정도의 부패라면 정치인들과 정당은 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의 방증이다. 이것은 항상 경제와 능력을 앞세운 보수에게 일종의 면죄부가 됐다. 그들은 조금, 아니 적당히 부패했다면 망하지 않는다.

진보는 이제 두 개의 짐을 짊어지게 됐다. 보수에게 경제와 능력 프레임을 뺏어오기 위해 박정희 신화에 버금가는 경제적 성과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단 하나의 도덕적 오점도 허용하지 않는 깨끗함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내건 가치를 부정할 때 더욱더 많은 비난을 받기 때문에 진보는 도덕이라는 프레임을 벗을 수 없다. 전자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했고 여러 정당이 서로 경합하며 정권이 교체되는 현대의 대한민국에선 박정희식 개발 독재가 불가능하기에 놀랄만한 경제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진보는 스스로 더 엄격해져야 한다.

진보에 있어서 도덕이란 양날의 검이다. ‘너보다는 내가 깨끗하지’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임하면 도덕의 검은 진보에게 향할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 깨끗할 수 있다면 도덕의 검은 진보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이라는 검을 잘 이용하기 위해선 진보는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진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자 역할이다.

정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모르겠을 때 고전만 한 것이 없다. 『논어』의 「안연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며,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다시 자공이 “부득이하게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립니까?”라고 물었고, 공자는 망설임 없이

“군비를 버려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은 어이없다는 듯 또다시 “부득이하게 한 가지를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립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이에 “식량을 버린다”고 답하며

“옛날부터 누구에게나 다 죽음은 있었지만,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 라고 말하였다.

진보에게 있어서 다행인 것은 촛불 시위와 박근혜의 탄핵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공정, 도덕,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다.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결국 도덕성으로 판단될 것이며, 정치는 앞으로 더욱 높은 도덕적 잣대로 판단될 것이다.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 쉬운 길은 없다. 도덕적 엄격함은 진보 스스로를 옭아매서 잠시 우리를 패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더욱 도덕적이어야 한다. 진보에 요구되는 도덕적 엄격함은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결국 진보를 승리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진보가 스스로 만들어낸 프레임을 저버리지 않고 그것을 지켜나간다면 우리는 더욱 단단한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는 양쪽 날개로 난다고 했지만, 필자는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의 날갯짓에서 진보가 한쪽 날개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진보는 날개를 넘어 몸통이 되고 머리가 돼서 사회와 세계에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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